미국 생활

인질극(barricade situation), 협상은 반드시 필요한가


                                                                                

2014년 4월 7일

한인 중에는 교도관의 총기를 탈취해 민간인 집에서 숨어들어가 인질극(barricade situation)을 벌였던 지강헌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비지스의 노래를 틀어달라고 요구하며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쳤던 범인의 목소리는 남다른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1980년대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진단하는 하나의 키워드로 작동하기도 했다.

지강헌 인질극은 극히 예외적이다. 한국사회는 보복과 응징이 주로 칼에 의한 상해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이뤄진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은 총이 흔하기에 개인적인 보복과 응징이 인질극의 형태로 나타난다.

최근 3년 동안 워싱턴 메트로 지역에서 발생한 인질극은 164건이 넘는다. 일주일에 한번 이상 꼴로 인질극이 발생하는 셈인데, 웬만한 인질극은 언론에 보도조차 되지 않을 정도다.

인질극은 영화나 범죄수사 드라마에 자주 소개된다.

✔ 인질극 협상, 법률에 규정돼 있나?

인질극을 다룬 영화에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협상가(Negotiator) 다. 이 협상가가 주인공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기 무력 진압을 주장하는 상관과 협상을 주장하는 협상가 사이의 설전이 주요 테마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질극이 발생하면 미국경찰은 반드시 협상을 벌여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경찰은 법률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인질을 잡고 있는 범인과 협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자없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전술의 하나로 협상을 선택하는 것이다.

경찰당국이 인질극에서 협상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은 계기가 있었다. 바로 Waco 다윗파 사건이다. 지난 1993년 텍사스주 Waco에서 발생한 다윗파 사건은 도시 외곽에서 종말론 신봉자들이었던 ‘다윗파’가 신도들을 인질로 잡고 정부와 대치하는 과정에서 대량의 사망자가 발생한 일이었다.

다윗파 신도들은 1993년 2월 28일 FBI 특공대 요원들이 들이닥치자 총격전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수사관 4명과 신도 6명이 숨졌다. 이어 50여 일 동안 대치한 끝에 같은 해 4월19일 벌어진 강제 해산작전에서는 다윗파 신도들이 있었던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해 어른 53명과 어린이 25명이 불에 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다윗파 교주였던 데이비드 코레시는 신도들이 자유의사에 따라 자신을 따르는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사실상 인질극을 벌인 것이었다. 당시 FBI 내부에서는 강제 해산작전이 인명피해를 키울 수 있기 때문에 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으나 결국 강제 해산 과정에서 치명적인 결과를 얻고 말았다.

이 사건에 대한 반성으로 미국 경찰은 인질협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게 됐다. 대부분의 인질극 사건은 경찰의 압도적인 화력을 전제로 하고 있다. 강제적인 무력 진압은 경찰의 필연적인 승리로 귀결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인명피해가 불가피하다. 특히나 무력 진압으로 인질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면 수천만불의 손해배상을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인질협상 과정은 법률에 규정돼 있지 않아도 경찰이 무력진압 이전에 시도하는 관례적인 절차로 통용된다.

실제로 협상 과정 없이 인질극이 해결 될 경우 사상률은 78%에 달했다. 그러나 인질과의 협상을 시도했을 때 협상 성공률은 95%에 달했다. 사상률이 5%에 불과한 것이다.

FBI는 Waco 사건을 계기로 인질극 협상을 적극 도입해 1996년 몬태나주 Jordan에서 발생한 81일간의 인질극, 1997년 텍사스주 Fort Davis에서의 7일간의 인질극 등을 모두 성공적으로 해결했다.

✔ 이해받기 원하는 범인, 시간 끌면 해결 된다

영화에서는 협상가가 방탄 조끼를 입고 인질극 현장에 진입해 범인과 요구사항에 대한 협상을 벌인다. 때론 인질극 현장에서 기지를 발휘해 인질을 구출하고 범인을 생포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이다.

전문가들은 실제 인질극 현장에서 협상가가 범인과 지근거리에서 마주보고 협상을 하는 사례는 전체의 13% 미만이라고 말한다. 주로 전화나 확성기 등을 통한 협상이 진행되는데, 이 같은 방법도 무력진압보다는 훨씬 효과적이다.

직접적인 대면을 별로 중요시 여기지 않는데, 그 이유는 따로 있다. 인질극 범인은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범죄를 저지른다. 상황 대처 시스템이 한번 무너지면 위기상황으로 빠져들어 정상적인 사고기능이 방해받게 되며, 이성적이고 인식력 있는 수준에서 정상적으로 해결되던 문제가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수준에서 다뤄지게 된다.

따라서 정상적인 사고기능 수준으로 다시 돌아오게 함으로써 사람의 대처능력을 회복시켜주는 것이 협상의 목적이다.

경찰은 협상가 교육에서 인질극 협상이란 결코 협상대상자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못박는다. 인질 협상가 교육에서 빠지지 않는 대 목이 ‘시간은 협상가의 동지(time is negotiator’s ally)’라는 말이다. 인질 대치극이 길어지면 범인들도 기본적 욕구들이 증가한다.

그러나 오히려 범인들의 스트레스는 감소한다. 범인은 서서히 감정적인 안정을 찾아가고 범행 당시의 충동적인 상황을 극복해, 합리적인 사고를 되찾게 된다. 협상가는 주로 범인들의 하소연을 듣는 일을 한다. 이들의 말을 이해하고 수긍하 는 과정에서 범인은 마음의 문을 열고 총을 내려놓게 되는 것이다.

인질 협상가는 어떤 사람인가

대부분의 인질 협상가는 경찰 내부에서 선발된다. 따로 외부에서 공모에 의해 선발하지 않는 이유는 범죄 수사 경력이 많은 수사관일수록 최고의 협상가 자질을 타고 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베터랑 수사관은 위험스런 환경 속에서 여러 유형의 범인을 만나왔으며 사건해결능력이 뛰어나다. 이들은 주로 상당히 발달된 인터뷰기술과 심문 기술을 이미 습득하고 있으며 인질극 현장에서 범인을 안정시키는데 기여한다.

지역 경찰도 대부분의 경력 10년차 이상의 베터랑을 대상으로 협상가를 뽑고 있다.

인질협상팀은 어떻게 구성됐나

FBI는 지난 1994년부터 위기협상전담반(Crisis Neotiation Unit)을 운영하고 있는데, 버지니아의 콴티코에 사무실이 있다. 이 전담반은 FBI의 최고 요직으로 꼽히는 형사사건부(Criminal Investigation)에 속해 있다. 그만큼 인질 협상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뜻이다.

전담반의 중요사건대응팀(CIRG)은 운용지원부문팀(OSB), 전술지원팀(TSB), 폭력범죄분석팀 (NCA V) 등과 함께 인질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전담반은 24시간 대응체제를 갖추고 있으며, 해외에서 발생한 미국인이 관련된 납치사건을 지원하기 위해 해외에도 배치되는데 1990년 이후 100 여건의 사건에 배치됐다.

전담반에 속한 협상가는 FBI 현장협상가와 지역 경찰협상가에게 전화로 지원한다. FBI는 56개 지부에 약 340명의 위기협상가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담반 내의 협상팀은 팀장(Unit Chief), 9명의 선임수사감독관(Supervisory Special Agents), 4명의 보조수사관(support staff)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역경찰도 규모의 차이가 있으나 대부분 협상팀을 운영하고 있다. 버지니아 페어팩스 카운티와 메릴랜드 몽고메리 카운티도 형사국 내에 전담 협상가를 두고 있으며 필요에 따라 주경찰이나 FBI의 지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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