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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낙태운동의 기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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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여성 참정권 운동 주도했던 인물들이 

낙태 이슈 본격 제기


미국은 지난 1973년 연방 대법원의 'Roe v. Wade’ 판결로  임신 6개월 전까지는 낙태를 선택할 수 있는 헌법상의 권리를 인정했다. 이후 이후 미국 내에서는 5천만 건 이상의 낙태가 합법적으로 이뤄졌다.


낙태 반대론자들은 이 같은 숫자는 19세기 이후 지구상에서 발생했던 모든 종류의 홀로코스트(대학살) 희생자 숫자를 능가한다고 밝히고 있다.

왜 낙태와 관련된 끊임없는 논란이 발생하는지 알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은 드물다. 

  

흔히 미국이 기독교의 나라이기에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려는 기독교 신자들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보수파 국민들이 낙태를 반대하고 기독교 신자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도 안된다.

보수와 진보파 공히 기독교인의 비율은 비슷하다. 


자유와 여성, 여성 인권

  

버지니아에는 SBA 리스트(Susan B. Anthony List)라는 단체가 있다. 

지난 1993년 창립해 40여만명의 회원을 거느린 전국 최대 규모의 낙태 반대 운동 단체다. 미국에는 10만명 이상의 회비납부회원을 거느린 대형 낙태반대운동단체가 30여개나 된다.

  

SBA 리스트는 정치인들에게 적지 않은 기부금을 낸다. 쿠치넬리 전 버지니아 검찰총장의 주지사 선거캠프에 무려 150만불을 기부한 적도 있다. 

  

생명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모토를 앞세우는 낙태반대단체도 있지만 소수다. 배아와 태아가 생명인지의 여부는 또다른 이슈로서, 낙태 이슈 연관성은 매우 적다. 

낙태에 반대하는 것이 여성의 인권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인데, 논리적으로 헛점도 있다. 

  

상식적으로 낙태를 합법화함으로써, 여성이 스스로 출산 선택권 행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여성운동의 본령일진대, 정반대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SBA 리스트를 이해하려면 이 단체의 이름에 걸려 있는 Susan B. Anthony라는 여성을 알아야 한다. 

  

이 여성은 19세기 미국 여성 참정권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한국인이 신사임당을 모두 알듯이, 이 여성을 모르는 미국인은 간첩 취급을 받을 정도다. 

 

그는 1불짜리 동전에 나온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는 1820년에 태어나 1906년에 사망했는데, 여성 불복종 운동을 주도한 가장 전투적인 여성운동가로 정평이 높다. 그의 묘비명에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라고 씌여져 있다. 

  

미국은 1920년에야 정식으로 여성에게 참정권을 개방했는데, 이는 이러한 초기 여성운동가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를 포함해 초기 여성운동가들 상당수는 낙태반대를 여성운동의 한 테마로 받아들였다. 

19세기 중반을 생각해보자. 결혼이라는 제도가 아직 정착되지 않은 신흥국가 미국은 문맹률 60%에 유럽의 온갖 종류 인종들의 집합소였다. 게다가 반복되는 전쟁과 서부개척으로 인한 갈등, 그리고 남성지배 사회는 자연스러웠다. 


결혼이라는 제도로 여성은 보호받지 못했으며, ‘인격체’가 아닌 ‘남성의 소유물’로 평가받았다. 

결혼률 자체도 높지 않았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1850년대 미국의 결혼률을 40% 안팎으로 추정하고 있다. 

  

남성 입장에서 여성의 임신은 달갑지 않았다. 지금의 여성과 아동의 지위를 그때와 비교해선 안된다.  당시 유럽과 미국은 8세 아동의 노동이 합법적이었다. 아이와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었을 뿐이다. 

  

낙태를 거부하는 여성을 상대로 살인과 린치, 그리고 위험한 낙태 수술을 감행하다 숨지는 여성이 부지기수였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면 여성운동가들이 왜 낙태를 반대했는지 알 수 있다.

  

남성으로부터 아이를 지키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미국의 건국이념의 큰 축은 두개다. ‘자유’와 ‘사유재산 보호’다.

  

낙태이슈는 사적재산 보호에 대한 치열한 법리 논쟁의 결과이기도 하다. 여성은 물론 아이까지 남성의 소유물로 간주됐던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초기 여성운동가들은 아이의 소유권을 남성으로부터 뺏어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낙태 반대 운동은 사유재산 보호 이념의 연장선상에 위치해 있다. 

  

Susan B. Anthony는 뉴욕주를 대표한 노예해방협회의 대의원이기도 했다. 노예 해방, 여성 참정권, 낙태반대, 아이 소유권에 대한 이슈가 한꺼번에 뭉쳐져서 전개됐던 기원을 이해해야만 현재의 낙태 이슈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낙태반대운동은 여성의 인권을 지킨다는 측면에서 발달했던 것이며, 이들의 논리가 보수적이라고 공격할 수 없는 시대적인 상황이 결부돼 있는 것이다. 

  

이런 배경 때문에 낙태와 노예제가 연결되는 발언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인데, 미국의 여성운동이 나중에 여러 갈래를 나눠지면서 여성의 자유가 완벽히 성립하면서 출산 선택권을 지녀야 한다는 분파가 성립돼 낙태찬성운동의 주류를 형성해 갔으며, 오늘날의 대립을 야기시켰다. 

  

미국은 ‘자유’ 때문에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나라다. 이해할 수 없는 문제는 모두 이 ‘자유’에서 비롯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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