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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국기 문란... 박근혜 정권의 앞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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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선실세 국정농단사건이 한국 정치 전체를 블랙홀에 빠뜨리고 있다.

비선실세 최순실은 박근혜의 역린(逆鱗)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은 봉건시대에서조차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겨졌던 일이었기에 충격이 더 크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최고 통치권력을 국민의 양해없이 민간인에게 위임하고 대리통치를 받는 것 같은 초유의 사태가 국민의 역린을 건드린 셈이다.


전직 대통령들도 측근비리는 많았으나 이번 사건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이순자,김현철과 홍삼트리오, 노건평 등은 어쨌든 최고권력자 가족이었거나 전횡을 휘둘렀던 역대급 2인자들 역시 모두 공직자였다. 세계사적으로도 공직에 있지 않은 비선실세에 의한 국가통치 사례를 찾기는 쉽지 않다. 


역대 전직대통령들과 연관된 비리에 이미 익숙해(?) 있는 한국민들이지만 이번 사건을 더 황당해하고 참담해하는 것도 이런 데서 연유한다.


박근혜 블랙홀 탈출 방안 1. 거국중립내각 

박근혜는 대통령 연설문 유출 등 빠져나오기 힘든 증거자료가 나오자 2분짜리 사과문으로 무마를 시도했으나 역풍을 맞고 있다. 

현재 정국 주도권을 넘겨받은 야당 입장에서는 박근혜의 차기 대선 개입을 차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거국중립내각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최순실 사건으로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기초적인 신뢰조차 붕괴된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를 계속 용인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1년여의 임기를 앞두고 하야나 탄핵, 혹은 또 다른 격변 사태가 발생시 정국은 온통 소용돌이 안으로 빨려들어갈 수밖에 없다. 

야당의 유력 대선주자 문재인은 거국중립내각 제안을 통해 “대통령이 초래한 위기가 북핵보다 더 무섭다”며 “대통령이 아무 권위 없는 식물 대통령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고 남은 임기 동안 국정은 표류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문재인은 박근혜에게 책임 있는 사람들을 엄중히 문책함과 동시에 대통령 스스로 관련된 사람들과 함께 검찰 수사를 받을 것을 요구했다.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 등 검찰의 신속한 수사를 먼저 자청하고, 검찰 수사에 협조하면서, 당적을 버리고 국회와 협의하여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국민의 당과 정의당도 일제히 거국중립내각 제안을 하고 나섰다. 
현재 새누리당 내부에서 박근혜 탈당 카드를 일차적으로 꺼낸 것은, 거국중립내각으로 가는 첫단계라고 할 수 있다. 새누리당 또한 박근혜를 비호하거나 연결고리를 남겨둘 경우 차기 대선 재집권과 차기 총선 다수당 지위를 보장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 경우 거국 중립내각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여당 내 친박 그룹은 자연스러운 해산 수순을 밟게 된다. 
이후 국민적 합의에 의해 양진영으로부터 신망을 얻고 있는 인물을 국무총리로 임명하고, 국무총리에게 국정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기며 새로 임명된 법무부 장관이 검찰을 지휘하면서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 

수사 후에도 탄핵 등이 아니라면 현직 대통령의 불기소 특권과 불체포 특권이 헌법상 보장되기 때문에 박근혜의 임기를 보장해 최소한의 체면을 살려줄 수 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역대 신구정권 교체기마다 이뤄졌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안전약속, 즉야권이 박근혜의 퇴임 이후를 묵시적으로 보장할 경우 실현 가능성이 없지도 않아 보인다. 
상식적인 선에서 가장 합리적인 박근혜의 퇴로가 될 수 있으나 이를 수용할지 거부할지는 박근혜의 뜻에 달려 있다. 

하지만 박근혜의 실권을 전제로 명목뿐인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것에는 위헌 논란이 뒤따를 수 있다. 거국중립내각은 운영의 묘로서, 얼마든지 운용이 가능해 보이지만, 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권한을 내려놓도록 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다분하다. 
허수아비 대통령 뒤에 실세 총리가 국정을 총괄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국무총리의 통할권을 뛰어넘는 행위다. 

결국 박근혜 퇴진을 전제하지 않고 합헌의 테두리 안에서 임기를 보장할 묘수찾기는 쉽지 않다. 
자칫 이러한 구상 자체가 위헌 시비 속에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박근혜 블랙홀 탈출 방안 2. 하야   
한국에서는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세번의 대통령 하야사건이 발생했다. 
하야 1호는 이승만 전 대통령으로, 1960년 3월 15일 제4대 대통령  선거를 대대적인 부정선거로 치르는 바람에 4.19혁명의 도화선을 제공했다. 

고무신-막걸리 선거, 대리투표, 위장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등 가능한 모든 부정선거가 동원됐는데, 이후 한달 이상 시위가 계속되다, 시위 진압을 위해 계엄령을 선포하고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반발은 더욱 커졌다. 고 이승만 대통령은 결국 4월 26일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한 후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다.

4·19 혁명으로 등장한 민주당정권에서 윤보선이 제4대 대통령으로 선출됐으나 정국혼란을 틈타 박정희 등 군부세력이 1960년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 후에도 윤보선은 자리를 지키다가 결국 군부와의 갈등 끝에 1962년 3월 22일 불명예 퇴진하고 말았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거쳐 대통령에 취임했으나1979년 12월12일 전두환을 위시한 신군부 세력의 발호로 권력을 잃고 1980년 8월 16일 하야했다. 

기존의 대통령 하야 사례는 모두 비정상적인 권력 이동으로 인한 정변적 성격이 강했는데, 이는
그만큼 권력기반이 약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하야는 어떤 이유에서든 국정 수행 능력을 상실한 최고통치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명예로운 방법일 수 있다. 

박근혜 블랙홀 탈출 방안 3 탄핵  
대통령 탄핵소추는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현재 야당이 과반 이상을 점하고 있기 때문에 탄핵 발의가 가능하고 박근혜와 날을 세우고 있는 비박계 의원 중 일부만 가세하더라도 200명 정족수를 채워 탄핵발의안이 가결될 수 있다.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중립의무 위반 등의 혐의로 탄핵이 발의돼 헌법재판소 탄핵까지 간 바 있다. 하지만 2004년 탄핵재판으로 탄핵을 주도했던 당시 야당 한나라당은 역풍을 맞아 다음번 총선에서 참패하고 정국 주도권을 잃고 말았다. 

현재 박근혜 지지율은 완전 붕괴된 상태지만, 그를 심정적으로 동조했던 과거의 40%대 콘크리트 지지층이 재결집해 특유의 연민의식을 분출할 경우 오히려 박근혜에게 기사회생의 길이 열리게 할 수도 있다. 탄핵이 박근혜 지지층에 대한 또다른 역린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나 제2야당 국민의 당 지도부는 모두 탄핵에 대한 깊은 상흔을 지닌 이들로, 선뜻 나서기 힘든 상황이다. 

또 탄핵이 발의되면 규정에 따라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하고 정국 주도권을 여전히 새누리당이 쥐고 갈 수 있다는 점, 박근혜에게 시간을 준다는 점도 부담이다. 
물론 탄핵심판단계까지 간다면 탄핵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2004년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탄핵 결정을 위해서는 그 중대성에 비추어 국민의 신임을 저버리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적극적인 위반을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노무현의 행위는 수동적 소극적인 위반으로 그치고 있어 탄핵 결정을 기각한다”고 밝힌 바 있으나, 최순실 사건은 그 중대성에 비추어 국민의 신임을 저버리기에 충분하며, 야권 뿐만 아니라 조선일보를 축으로 한 보수세력조차 등을 돌린 상황이다. 

청와대 문서는 여러겹의 방호벽으로 둘러싸여져 있어, 민간 인터넷 이메일도 사용이 불가능하다.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국무장관 재임시 사적인 이메일을 이용해 국가중대사를 주고받았다는 이유로 곤욕을 치른바 있는데, 이와도 성격이 전혀 다른 사안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본질은 백악관 정보의 외부유출과 대통령이 이를 부인하다가 탄핵 위기에 몰려 하야를 선택했다. 

빌 클린턴에 대한 탄핵 발의는 백악관 내의 성행위에 대해 부인하다가 위증죄가 걸렸을 뿐이다.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하면 탄핵재판을 통해 탄핵될 가능성이 적지 않은 것이다. 
한국에서의 탄핵 심판은 사실상 국민감정에 의해 좌우되긴 했으나 법치의 정신을 따르자면 탄핵은 가장 합리적인 절차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 블랙홀 탈출 방법 4 버티기
박근혜는 그동안 숱한 정치적 위기에서 벗어나 대통령의 자리에 이른 인물이다. 
아버지의 후광과 비선실세의 도움이 있긴 하지만, 국정수행능력과는 별개로 정치적 수완은 탁월하다고 할 수 있다. 

1987년 전두환 대통령은 호헌조치를 빌미로 대규모 시위사태가 발생하고 개헌이 이뤄지는 와중에도 실권을 놓지 않았다. 

1987년 당시와 마찬가지로 향후 정국은 온통 차기 대선문제가 박근혜의 과오를 덮고도 남을 수 있으며, 각 대선주자의 유리한 정치지형 모색 암투 속에 박근혜는 권력을 계속 유지할 수도 있다. 
박근혜의 버티기는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 중의 하나인 셈이다. 
한국에서는 두번의 쿠데타와 국가비상권 하의 긴급 사태 포고령을 포함한 열 여섯번의 계엄령이 발령된 바 있다. 

이승만은 비상시국속에서 한달 이상을 버티다가 계엄령에 이은 발포로 인해 피를 본 후에 결말을 맺었다. 박정희 시대의 숱한 긴급사태도 유사한 맥락이다. 

전두환은 계엄령으로 시작해 1987년 당시 계엄령으로 막을 내릴 뻔한 인물이다. 
버티기가 시위사태를 유발하고 국가안보를 이유로 비상사태가 거론될 수 있으며 특히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도의 북핵위기나 군사적 도발에 의한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어, 예기치 않은 돌발변수가 또 다른 국면을 전개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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