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경제 뉴스

차용증 없이 돈 빌려주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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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에 살고 있는 A씨는 지난 2015년 15년 가까이 알고 지내던 B씨에게 3만불을 빌려줬다.   

B씨는 가발사업을 크게 해 부자로 소문난 사람으로, 빚을 떼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연 20%의 이자 약속을 믿고 아이의 대학 학자금용으로 마련해 놓은 돈을 선뜻 빌려줬으나 서너달 동안 이자를 받는둥 마는둥 하다가 종내 무소식이었다. 

B씨는 처음에는 사정을 얘기하며 차일피일 시간을 미루다가 시간이 지나자 아예 안면을 바꿔 버렸다. 

  

A씨는 아이 학비 때문에 발을 동동거리는 자신의 처지에 비해, B씨는 멀쩡히 고급차를 타고 다닌다는 사실에 분노해 이 차량을 가져오고 말았다. 

  

그러나 B씨는 경찰에 신고를 했고 A씨는 차량 절도 혐의로 입건됐다. 

빚 대신 차를 가져온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경찰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는 버지니아주의 구두로 된 부채 ‘공소시효(statute of limitations)’3년이 지나 있어 법적으로 부채 상환을 청구할 수 없었기에, A씨가 되레 법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 때문이었다. 

  

제도권 금융 내에서 자금조달이 쉽지 않은 한인 이민 커뮤니티에서 서로 알고 지내는 한인들간에 돈을 빌리고 갚는 일이 흔한 편인데 이로 인한 분쟁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 2008년 경제위기 이후 한인사회의 경기가 그전 같지 못하고 그에따라 자영업자들의 사채 조달이 늘어났는 데 경기 마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게되자 연체사태도 불어났다.

  

부채 공소시효를 염두에 두고 ‘3년만 버티면 된다’는 의식이 채무자 사이에서 퍼지게 된 것도 이 즈음이었다. 

  

또 다른 한인 D씨는 대학동창, 동향사람, 교회지인, 자신의 피고용인, 부인의 친구 등 모두 9명으로부터 24만불을 빌렸으나 아직 한푼도 갚지 않았다.  

를 고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아무일 없다는 듯이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정확한 통계가 존재하지는 않지만 이 같은 유형의 한인간 채무 관계에 있어의 디폴트비율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미국은 제도권 금융이 발달해 있기 때문에 사적인 채권자 보호규정이 너무도 허술하다. 사적인 채권채무관계를 제도권 안으로 흡수해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금융법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개인간 금전거래시 제대로 된 계약서나 차용증서를 쓰지 않고, 심지어 구두계약 후 돈을 주고받는 데 따른 문제도 크다. 

채권액이 수천불에서 수만불 등 비교적 소액이라는 점과 빚을 받으려면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가 대부분이라 빚쟁이가 되레 큰소리를 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한인 간 빚받기 걸림돌1- 공소시효 
각 주정부는 금융거래 안정성을 위해 각종 부채 종류에 따라 공소시효를 두고 있다.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채권소멸시효가 10년이지만 시효를 연장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으며 시효가 지나더라도 민사소송으로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공소시효가 3년에서 6년 정도가 보통이다. 
각종 부채채권은 계약 형태에 따라 달라지는데, 메릴랜드주의 경우 구두로 계약하든 서면으로 계약하든 상관없이 3년이면 종료된다. 

버지니아는 구두 3년 서면 5년, 뉴저지와 뉴욕은 모두 동일하게 6년이 적용된다. 
차용증의 경우 네 주가 모두 6년으로 동일하지만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려면 공증 등을 받아야 한다. 공소시효의 기산일은 보통 분납 혹은 이자지급 마지막날 부터 시작된다. 
  
시효가 지나면 아예 소송을 통해 법적 판결을 받을 수 없다. 
구두로 계약하고 현금으로 원금과 이자가 오갈 경우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수천불에서 수만불에 이르는 한인간 금전거래의 상당수가 아무런 증서없이 돈만 오가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특히 자영업자들의 경우 세금 등의 문제로 근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현금 거래가 성행한다. 제도권 금융에서는 근거가 확실하고 추심 가능성이 희박할 경우 곧바로 추심업체로 채권을 넘겨 집요한 빚독촉이 이뤄지며 소송으로 가는 것이 정상이지만, 한인간에는 이러한 경우가 많지 않다. 
  
공소시효가 지난 부채 채권이라고 하더라도 빚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빚은 남아있지만 법원에서 다툴 수 없다는 것 뿐인데, 빚을 떼인 채권자 입장에서 마지막으로 크레딧 리포트에 부채연체 기록을 남겨 7년 동안 경제적 절름발이로 만드는 보복을 할 수 있지만, 개인간 채권거래에서는 이것도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뉴욕주의 E씨는 2만불의 채권을 500불에 사겠다는 추심업체와 접촉했다가 절차가 너무도 복잡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포기하고 말았다.    
  
주택 모기지 융자 같은 담보채권은 모기지 페이먼트를 연체하면 즉각 압류처분을 내릴 수 있지만, 차용증과 계약서 등에 담보조건을 걸더라도 이를 공증하고 법적인 제약을 피해가는 것은 힘들다. 
  
특히 소액의 경우 빚을 주는 과정에서부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자동차 담보의 경우 법원 등기소 등을 들락거리며 보름 이상의 시간을 지체하기도 한다.
소액인데다 아는 사이에 계약서나 차용증이면 됐지, 담보까지 거느냐는 시선도 부담이다. 
 
한인 간 빚받기 걸림돌2- 조금씩 갚는 것보다 안갚는 게 이익이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재산을 추징하는 과정에서 검찰은 시시하게 주기적으로 그림 한두점 씩을 압류하곤 했다. 압류 시점에서 공소시효가 다시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방법이 미국에서 채권 공소시효를 살리기 방법 중의 하나다. 빚의 일부를 받아낸다면 공소시효가 무한정 연장될 수 있다. 빚을 갚겠다는 각서 또한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방법이다. 
  
채권 추심업체들도 이 같은 방법을 사용해서 공소시효를 무력화시키는데, 일부 악덕 채무자들은 이 같은 사실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말로는 빚을 갚겠다고 하면서 각서를 써주는 것을 피하거나 부채 중 극히 일부 소액을 갚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절한다. 
  
이렇게 따지면 빚의 일부라도 갚거나 갚겠다고 약속을 하면 발목을 잡히기 때문에, 아예 전체를 갚지 않으려는 전략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한인 간 빚받기 걸림돌3- 소송비용과 소송판결  
소액 변제 소송(Small Claims)의 경우 카운티 지방법원을 통해서 비교적 간단한 절차로 할 수 있지만 한인의 경우 아무래도 변호사가 필요하다. 버지니아 페어팩스 카운티 법원의 경우 한도액이 5천불인데, 압류권 등을 보장하는 판결은 매우 드물어, 채무자의 변제능력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변호사 비용만 날릴 수 있다. 
  
수만불 대의 채무 변제를 다투는 소송이라면 소송 기간이 보통 1년에서 2년을 넘어갈 수 있는데, 변호사 비용이 몇천불 대에서 몇만불 대로 넘어갈 수 있다.
  
모든 게 입증돼 승소를 하더라도 채무자가 돈을 갚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 역시 변호사 비용만 날릴 수가 있으며 장기간의 소송으로 피폐해지고 만다. 
  
채무로 몰리면 파산이 쉽다는 것도 빚받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뉴저지주의  H씨는 천신만고 끝에 법원 소송에서 승리했으나 채무자는 이를 비웃듯 파산을 하고 말았다. 
  
한인들간 금전거래 주 대상인 수천불에서 수만불의 돈거래는 떼이기 딱 좋은 조건만 두루 갖추고 있는 셈이다. 

한인 간 빚받기 걸림돌4-도망가면 끝 
식당을 운영하던  I씨는 모두 90만불로 추정되는 채무를 뒤로 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미국 사법 시스템의 특성상 주경계를 넘어간 사람을 찾는 것은 형사범이라고 하더라도 연방기소범이 아닌 한 찾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I씨에게 돈을 꿔준 사람은 4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가 한국으로 갔다는 소문을 들은 채권자 T씨는 2만불짜리 채권을 들고 대사관 지인을 통해 파견공무원과 상의를 했으나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접수는 할 수 있지만 I씨를 찾는다는 보장은 없다고 밝혔다. 

한국과 미국은 상호수사협정 및 범죄인인도조약을 맺었지만 거액의 경제사범이 아닌 한 작동하지 않는다. 채권자가 모두 연대해 90만불 채권으로 싸워도 인터폴 역할을 하는 연방국토안보부 수사국 HIS나 한국 경찰청 외사국을 움직일 수 없다. 
  
대사관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며 연방당국에 신고하고 연방당국이 사건의 경중을 따진 후 필요에 의해 한국정부에 요청하는 절차가 기다리는데 형사범이 아닌 민사채권을 이유로 이 조약이 가동된 예는 찾아볼 수 없다. 

한인간 빚받기 걸림돌5-사채가 너무 흔하다  
역설적으로 한인간 금전거래가 자주 와해되는 이유는 빚이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제도권 금융에 접근이 쉽지 않은 한인들이 너무 많고 접근을 할 수 있는 한인들도 디폴트로 인한 채권자 위험을 스스로 지기보다는 남에게 떠넘기는 게 훨씬 쉽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채를 통한 자금조달을 선호한다. 
  
일명 선수급 채무자들이 지역사회마다 물을 흐리고 있는데, 이들 선수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디폴트 위험은 연쇄적인 디폴트를 불러온다는 점이다. 
이 디폴트 위험이 제도권 안에서 돌아다닌다면 금융기관이 망하는 것으로 족하다. 
  
악성채무자가 하나둘 늘어나면 은행 재정이 부실해져 망할 수도 있는 일인데, 이 악성 채무자 간의 연쇄고리는 없다. 
  
그러나 한인사회의 경우 악성채무자와 채권자, 그리고 악성채무자의 또 다른 채권자와 이 채권자의 또 다른 악성 채무자 혹은 채권자가 맞물려 있다.
은행은 궁하면 단기금리로 중앙은행의 여신이나 또다른 제도권 내의 여신을 궁리할 수 있지만, 한인사회에서는 채권자와 채무자 모두 돈이 급하면, 혹은 빚 갚을 날짜가 다가오면 또 다른 사채를 염탐해야 한다. 

돌고 돌아서 한인사회로 쏟아지는 디폴트 위험은 한인사회 경제질서 전체를 망치게 된다. 한인들이 사채를 얻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크레딧 여건이 탄탄하면, 정부가 제도적으로 마련한 경제적 사회안전망이라고 할 수 있는 제도권 금융에 이러한 리스크를 안길 수 있지만 한인사회의 개인간 채권은 안전장치가 전무하다. 
  
한인사회의 역사와 함께하는 한인간 사채 디폴트 리스크가 오늘도 유령처럼 떠돌며 경제적 불신으로 전환돼 커뮤니티 전체의 경제적 역량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사채는 사실상 마지막 수단인데, 그 마지막 수단을 우선 수단으로 삼는 1970년대적 한국식 사고방식을 탈피하지 않으면 한인경제는 마지막 카드를 초장부터 잃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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