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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는 왜 불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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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누적된 불평등, 슬럼 쇠퇴와 만성적인 경제 침체

김옥채 기자

 

볼티모어에서 20년 넘게 장사를 하는 한인 박씨는 한국언론의 특파원발 기사를 보고 헛웃음을지었다.

무법천지’, ‘폭동 지나간 후 폐허 방불케 해같은 헤드라인을 뽑은 기사는 모두 가짜 기사라는 것이다.

박씨는 폭동은 불과 두세시간 동안 벌어졌는데, 대포가 사용된 것도 것도 아닌데 폐허라는 말은 가당치도 않다가보지도 않고 쓰는 그런 기사는 현실을 왜곡할 뿐이라며일침을 가했다.

박씨는 이곳은 신호등이 고장나면5년 넘게 방치되는 곳이며 그렇게 많은 벽돌이투석으로 쓰일 수 있었던 이유는 널린게 2차 대전 이전에 건설돼 지금은 폐허로 방치된 벽돌 건물이기때문이라고 밝혔다.

또다른 한인 김모씨는 볼티모어 슬럼 지역을 이전에 한번이라도 구경해 봤다면 폭동으로 폐허가 됐다는 말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볼티모어는 폭동으로 폐허가 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폐허였다.

이번 볼티모어 폭동사태는 늘상 있어왔던 일로 치부하거나 단순히 백인경찰관에 의한 흑인 비무장청년 살해사건으로 단순화하는 순간, 볼티모어가 폭동으로 폐허가 됐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날 수 없다.

 사건은 지난 4 19일 프레디 그레이(25)가 경찰에 체포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경찰을 본 그레이는 도주를 했으며 모두 6명의 경찰관에 의해 체포됐다.

그가 도주한 이유는 뚜렷하지 않다.

주머니에는 주머니칼이 나왔으나 미국의 어떠한 법에도 칼 소지 금지 명문을 지니고 있지 않다.

프레디는 볼티모어의 대표적인 슬럼은 서부 샌드타운-윈체스터에서 나고 자라 고등학교를 중퇴하고마약장사에 나선 인물이다.

아직 25세 밖에 안됐지만, 경찰에의해 15번 이상 체포된 전력이 있으며, 이중 9번은 기소됐다.

최장 교도소 복역 기간은 2년이었다.

이 정도는 볼티모어 슬럼의 평범한 흑인 청년 수준이다. 

체포당시 마약은 없었으나 그는 보통의 흑인 청년처럼 다시 교도소에 가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지 잘 알기에도주부터 하고 본 것이다.

그는 편모 슬하에서 다른 두명의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헤로인 중독자로 문맹이었다.

그레이를 비롯한 세 남매는 모두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읽기와 쓰기능력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흑인 슬럼가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노후된 건물의 납성분 페인트와건축자재로 인한 납중독 문제다.

볼티모어 슬럼가 주민들은 이 문제를 공론화해 집주인과 정부를 상대로 대규모 집단 소송을 벌인 바 있는데, 그레이 가족도 원고 중의 하나였다.

볼티모어의 프레디 그레이는 미주리주 퍼거슨의 마이클 브라운, 클리블랜드의 타미르 라이스, 뉴욕시 스태턴 아일랜드의 에릭 가너,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노스찰스턴의월터 스콧과 똑 같은 배경의 흑인청년이었고 똑 같은 사유로 죽었을 뿐이다.

흑인 청년 죽음 이후 폭동의 양상도 동일하며, 폭동 전과 후는 동일하게 폐허의 모습을 보일뿐이다.

 

대도시 슬럼은 왜 더 가난해지나

95번 고속도로를 따라 볼티모어에 들어서면 가장 높은 빌딩인529피트(161미터)Transamerica Tower를 볼 수 있다.

이 빌딩은 지난 1971년 완공된 것이다.

두번째로 높은 빌딩 Bank of America Building 1924년 완공된 것이다.

볼티모어는 40년 이상 성장이 멈춘 채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도시다.

1950년대 100만명을 헤아리던 도시 인구는 현재 62만명 수준에 불과하다.

대서양 연안과 오대호 연안 제조업 벨트가 볼티모어로 합쳐져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 있었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심지어 읽고 쓸 줄도모르던 흑인도 누구나 일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대형 부두와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볼티모어는 흑인들에게 매력적인 장소였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미국의 제조업 일자리를 빠르게 감소했다.

지난 1970년대 볼티모어지역 제조업 일자리는 19만개이상이었으나 지금은 5만개 이하로 줄어들었다.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중산층으로 올라서고 타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으나 볼티모어 흑인들은 볼티모어 도심 주변에 슬럼을 형성했다.

볼티모어는 다른 대도시 지역과 마찬가지도 도심을 빙둘러 슬럼이 에워싸고 있다.

볼티모어는 현재도 흑인 인구 63%에 달한다.

폭동이 발생했던 곳도 이곳이다.

방송사와 경찰 헬기는 슬럼 바로 근처의 고층 건물 탓에 고도를 낮추지 못하고 카메라 줌을 당기느라 폭동 화면 속으로 회색 칼라가 더욱짙었던 것이다.

볼티모어 흑인들은 볼티모어를 저주받은 도시(charmedcity)’로 부른다.

폭동의 진원지는 짚코드 21217 지역으로 연방정부빈곤선 이하로 살아가는 주민 비율이 34%가 넘는다.  

미국 전체 평균은 15%이며, 볼티모어 백인 거주지역인짚코드 21210 지역은 3.6%에 불과하다.

이 지역의 실업률은 지난 2011년 한때 19.1%이며지금도 15%를 넘는다.

볼티모어 시 전체의 고교 졸업률은 58%, 슬럼 지역의 경우40%에도 미치지 못해, 전국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번 폭동에서 유독 카키색 바지와 백팩을 맨 어린 10대 청소년이 돌을 던지는 모습이 유독눈에 띄었는데, 하교길에 폭동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볼티모어 지역 흑인 유아 사망률은 백인 평균보다 9배 이상 높다.

에이즈 감염률은 보통의 흑인 커뮤니티보다 5배 이상 높다.

볼티모어 슬럼 흑인과 볼티모어 북서부 중산층 백인의 기대수명 격차는 24년에 달한다.

역설적으로 모든 대학 평가에서 전세계 의과대학 서열 1위를 고수하는 존스 합킨스 대학을 경계로슬럼과 백인 거주지역이 갈린다.

볼티모어 흑인 슬럼은 인근의 워싱턴이나 뉴욕시 슬럼과 격이 또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도시 내부에서 끊임없이 일자리를 재생산해내야 슬럼 쇠퇴를 막을 수 있으나, 볼티모어는인구가 계속 쇠퇴하면서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슬럼은 외부와의 고립이 가속화되고 만성적인 일자리 부족에 따른 절망이 볼티모어 슬럼을 더욱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이번에 폭동이 발생한 짚코드 21217지역 주택의 30% 이상이 폐가로 방치돼 쓰레기장이 되고 있다.

폭동이 지나간 자리를 사진으로 살펴본, 가보지 않은 기자의 글을 통해폭동 이후 폐허로 변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불평등을 빼고서 1950년대 이후 미국 전역에서 발생한 114개의 크고 작은 흑인 폭동을 말할 수가 없다.

백인경찰관에 의한 흑인 비무장 청년 살인사건은 미국의 유사 이래 계속돼온 일이다.

왜 요즘 유독 이러한 사건 뒤에 폭동이 발생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오바마대통령에게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불평등 해소에 대한 흑인의 기대치가 높아졌으나,달라진 것이 아무것도 없자, 흑인들의 분노가 사소한 자극에도 분출하고 있는 셈이다.

슬럼가 흑인의 고통과 비례해 한인들의 고통도 늘어나고 있다.

폭동으로 피해를 본 한인 운영 매장의 문제가 아니다.  

한인경제가 진짜 우려하는 것은, 한인 상인의 슬럼 진출 역사가 시작된지난 1970년대 이후 슬럼경제가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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