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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인더스 문명의 발상지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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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이푸르 암베르 성 ■

서인도의 라즈푸트 제국은 이슬람의 영향을 많이 받아 기하학적 평면 형태의 정원들을 각지에 만들었으며 궁전건축과 정원을 연관성 있게 계획하였다. 


자이프르 북쪽에는 라즈푸트의 도성인 암베르(Amber) 성이 있다. 그 성 안에 있는 궁전은 훌륭한 건물들과 정원으로 형성되어 있다.

 

1592년 자이푸르의 라자만싱(Rajr Man Singh) 왕이 건축하기 시작해 약 150여년에 걸쳐 18세기 스와이자이싱(Sawai Jai Shingh) 왕에 의해서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암베르성은 원래 11세기 초 미나(Meena)왕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1592년 라자만싱 왕이 원래 성이 있던 곳에 새로운 성을 세웠고 18C 중엽 스와이자이싱 왕에 의해서 자이푸르에 새로운 성을 건설하고 옮기기까지 약 700년 동안 카츠와하(Kachwaha) 왕조의 성이었다. 높은 산에 둘러싸여 마오다(Maotha)호수와 무굴양식의 정원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위치한다.


만 싱(Man Singh) 왕은 암베르 성 안에 중정을 중심으로 궁전을 건축하였다. 암베르 성 앞에 있는 가네시야 문을 들어서면 이슬람 양식으로 조경이 된 중앙 정원 주위에 화려한 궁전건물들이 마주보고 서 있다. 

  

중앙정원의 화단 속에는 기하학적 형태의 석조로 만든 보도가 형성되어 있으며 중앙의 연못 중심부분에는 옥좌(玉座)가 배치되어 있다. 

따라서 악바르가 건설한 파테푸르 시크리의 정원을 연상하게 만든다.

  

암베르 성의 정원에서 매우 특이한 것은 성 앞에 큰 호수 속에 떠 있는 것같이 만들어진 3단으로 구성된 사분정원이다. 

  

이 정원에는 건물이 전혀 없으며 3단으로 구성된 정원에는 각 단마다 사분정원이 아름다운 수법으로 조경이 되어 있다. 

  

성은 붉은 사암과 대리석을 이용해 힌두와 이슬람 양식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화려한 색채의 모자이크와 벽화들이 아름답게 내부를 장식하고 창문은 스테인드글라스로 한 거울궁전이 있다. 

  

이 거울궁전은 채광이 좋아 촛불 하나로 온 방을 밝힐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궁전은 여름 더위를 식히기 위해 커튼에 물방울이 이슬처럼 흐르게 하는 가느다란 관을 설치했다.  


■ 파테푸르 시크리성 ■

16세기 후반 악바르 대제(Emperor Akbar, 1556?1605)가 건설한 파테푸르 시크리(Fatehpur Sikri, ‘승리의 도시’라는 뜻)는 10여 년의 짧은 기간 동안 무굴 제국의 수도였다. 

  

이곳의 기념물과 사원은 모두 획일적인 건축 양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하나인 자마 마스지드(Jama Masjid)는 인도에서 규모가 가장 큰 회교 사원으로 손꼽힌다.

 

파테푸르 시크리는 16세기 말 무굴 제국의 문명을 보여주는 훌륭한 본보기이다. 

이 도시는 1571년?1585년에 건설되었으며, 인도에서 가장 주목할 건축 업적으로 꼽힌다. 도시의 형태와 배치는 인도 도시 계획의 진보에 크나 큰 영향을 미쳤다. 

  

그중에서도 특히 샤자하나바드(Shahjahanabad, 옛 델리)가 큰 영향을 받았다. 

‘승리의 도시’는 무굴 황제의 수도로 하루살이 같은 짧은 영화를 누렸다. 

  

아들이 없던 악바르 대제는 1571년 이곳에서 만난 수피교 성자 샤이크 살림 치슈티(Shaikh Salim Chisti, 1480?1572)의 예언을 듣고 기적적으로 후사를 이을 자한기르(Jah?ng?r)를 얻었고, 그 과정에서 수도를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무굴 황제의 감독 아래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해 1573년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1585년 악바르 대제는 아프간족에 맞서 싸우기 위해 파테푸르 시크리를 버리고 라호르(Lahore)에 머물며 그곳을 새로운 수도로 정하였다. 

  

그 뒤 아그라(Agra)에 전염병이 돌아 도시가 황폐해지자 자한기르는 잠시 파테푸르 시크리로 피신하였다. 그 덕분에 1691년에 3개월 동안 다시 무굴 제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지역은 1892년 고고학 탐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버려져 있었다. 

아그라에서 40㎞쯤 떨어진 이 수도는 불행하게도 미래가 없었으며, 14년이라는 짧은 기간만 수도로서 영화를 누렸다. 

  

1585년 영국 여행자 랄프 피치(Ralph Fitch)는 이 도시를 ‘런던보다 훨씬 크고 인구도 많은’ 곳으로 기록하였다. 

  

이 도시는 일련의 궁전과 공공건물·이슬람 사원뿐 아니라 왕족·군대·신하를 비롯하여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온갖 사람의 거주 공간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복합 건물군이다. 지금까지 연구자들은 큰 건축물들이 밀집된 도시의 극히 일부분만 탐사하고 상대적으로 보존이 잘된 지역을 방문하였다.

 

  

파테푸르 시크리는 돌이 많은 고원 지역에 세워졌으며,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남동쪽에 인공 호수를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물이 거의 말랐다. 

  

파테푸르 시크리는 성채로 요새화된 6㎞의 성벽이 삼면을 둘러싸고 있으며 성문이 7개가 나 있다. 그중 북쪽에서 두 번째인 아그라 성문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널찍한 구역을 둘러싸는 성벽은 방어를 보장하기보다 새로운 도시의 경계를 나타내는 역할을 했다. 

  

다수의 주요 기념물은 가자(Gaza)에서 아그라로 가는 북쪽 길에서 발견되었다. 붉은 사암으로 만든 이 기념물들은 양식의 절충적 성격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들 기념물들은 힌두교도와 페르시아인과 인도-이슬람의 전통에서 차용한 것을 기반으로 한다 해도 동질의 그룹이다.

 

수많은 궁전과 정자, 파빌리온 가운데 특히 자주 언급되는 건축물로는 공식 접견실인 디와니암(Diwan-i-Am)이 있다. 이곳은 열주랑(列柱廊)으로 둘러싸였고 황제의 특별석이 있다. 

  

악바르 대제는 여기서 신하와 백성의 인사를 받은 뒤, 그들의 청원과 고충을 듣기도 하고 최고위직 판사로서 분쟁을 해결하기도 하였다. 

  

이 특별석은 다울라트 카나(Daulat Khana, 황궁)와 직접 연결되었으며, 북쪽 측면에는 ‘보석관(Jewel House)’이라는 디와니카스(Diwan-i-Kas, 황제의 비공개 개인 접견실)가 있다. 

  

기이한 기둥머리들이 원형의 발코니를 받치고 있는 디와니카스는 원래 가운데 있는 기둥에 황제의 옥좌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인상적인 유물로는 란치 마할(Ranch Mahal)이 있다. 

  

우묵하게 들어간 4층짜리의 이 건축물은 확실히 불교 사원을 연상하게 한다. 이곳에는 아누프 탈라오(Anup Talao)의 파빌리온, 튀르크 술탄 왕비의 파빌리온, 악바르 대제가 왕비 조다 바이(Jodh Bai)를 위해 지은 조다 바이 궁전, 비르발(Birbal) 궁전, 여행자 숙소, 의문의 ‘마구간’ 등이 있었다. 

  

악바르 대제의 관용적인 종교관 덕분에 파테푸르 시크리에서는 다양한 종교 건축물을 볼 수 있다. 

  

파테푸르 시크리 안에 있는 자마 마스지드는 인도에서 가장 큰(165mx133m) 이슬람 사원으로 10,0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다. 

  

이 사원은 1571년?1572년에 완성되었으며, 사원 벽에는 메카를 숭배하는 시구가 많이 새겨져 있다. 자마 마스지드 사원 한가운데에는 샤이크 살림의 묘당이 있다. 

 

그의 묘는 자한기르가 집권했을 때 건설한 것으로 격자 모양의 대리석 건축물이다. 궁정 남쪽에 있는 불란드 문(Buland Damaza)은 1575년에 완성되었다. 1572년 구자라트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여 세운 ‘승리의 문’이다.

 

■ 아그라 타지마할 ■ 

  

인도의 대표적 이슬람 건축. 인도 아그라(Agra)의 남쪽, 자무나(Jamuna) 강가에 자리잡은 궁전 형식의 묘지로 무굴제국의 황제였던 샤 자한이 왕비 뭄타즈 마할을 추모하여 건축한 것이다. 1983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시공을 초월한 완벽한 아름다움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며 22년 동안이나 그 무덤을 지었다는 한 남자의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 깃들었기 때문일까? 인도 이슬람 예술의 걸작 타지마할은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순백의 대리석은 태양의 각도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빛깔을 달리하며 보는 사람의 넋을 빼놓고, 웅장한 건물은 중압감은커녕 오히려 공중에 떠있는 듯 신비롭고, 건물과 입구의 수로 및 정원의 완벽한 좌우대칭은 균형미와 정갈함을 느끼게 한다.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의 수도였던 아그라(Agra) 남쪽, 자무나(Jamuna) 강가에 자리잡은 궁전 형식의 묘지다. 무굴 제국의 황제였던 샤 자한(Shah Jahan, 재위 1592~1666)이 끔찍이 사랑했던 왕비 뭄타즈 마할(MumtazMahal)을 추모하여 만든 것이다. 

  

무굴 제국은 물론 이탈리아, 이란,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의 건축가와 전문기술자들이 불려오고, 기능공 2만 명이 동원되어 22년간 대공사를 한 결과물이다. 

  

최고급 대리석과 붉은 사암은 인도 현지에서 조달되었지만, 궁전 내외부를 장식한 보석과 준보석들은 터키, 티베트, 미얀마, 이집트,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수입되었다. 국가 재정에 영향을 줄 정도의 거액이 투자되었다고 한다. 


왕의 사랑과 쏟은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찬란한 무덤’이라 불리는 타지마할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사랑의 금자탑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모습이다. 붉은 사암으로 된 아치형 정문을 통과하면 넓은 뜰에 수로가 있는 무굴양식의 정원이 펼쳐진다. 

  

길이가 약 300미터에 이르는 일직선의 수로 중앙에는 연꽃 모양의 수조가 있고, 분수가 물을 뿜어내고 있다. 수로에 비친 타지마할의 모습 또한 환상적이어서 수많은 사진가들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사랑으로 빚어낸 ‘찬란한무덤’

긴 수로의 끝에는 눈부신 순백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본 건물이 서 있다. 네 모퉁이에 배치한 첨탑을 비롯해 좌우가 정확한 대칭을 이룬 건물은 육중한 몸체에도 불구하고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내부와 외부의 벽면은 보석과 준보석으로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여기에는 대리석에 무늬를 박아 넣는 피에트라 듀라(Pietra-dura) 모자이크 기법이 활용되었다. 

  

건물 내부 1층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왕과 왕비의 관이 있지만 유골이 없는 빈 관이다. 샤자 한과 뭄타즈 마할의 육신은 지하 묘에 안장되어 있다. 


샤  자한 왕은 애초 타지마할과 마주보는 자무나 강 건너편에 검은 대리석으로 자신의 묘를 짓고, 구름다리로 연결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자무나 강 건너편에서 건물의 기단을 조성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지만 진위 여부는 확실치 않다. 

  샤 자한은 타지마할이 완공된 후 10년 뒤인 1658년 막내아들 아우랑제브(Aurangzeb)의 반란으로 왕위를 박탈당하고 아그라 요새(Agra Fort)의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 탑에 갇혀 말년을 보냈다. 

  다행히도 아그라 요새에서는 2km 떨어진 타지마할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1666년 죽은 뒤에는 그토록 사랑하던 부인 옆에 묻혔으니 마냥 불행하기만 한 말년은 아니었던 듯싶다.


타지마할의 위기

  타지마할은 요즘 들어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공해 때문이다. 

  자동차들이 내뿜는 엄청난 매연과 200여 곳의 주물 공장에서 뿜어내는 공해와 이산화탄소는 지구촌 가족들에게 감동을 전해 줄 타지마할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처음 건설할 당시 심어놓은 나무들이 크게 자라나 약간이나마 매연으로부터 건물을 지켜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 인도의 장례 문화 ■ 

인도는 오랜 역사와 여러 종교와 풍습으로 인해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다양한 장례 문화를 갖고 있다. 타지마할처럼 화려한 무덤부터 시신을 새들에게 먹이로 주는 조장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고대 인도에서는 불교의 영향으로 시신을 불에 태우는 화장을 원칙으로 하였다. 이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화장을 하며, 화장하여 나온 유골을 강이나 산에 뿌리고 있다. 그러나 티베트 불교를 믿는 일부 불교 신자들은 시신을 독수리의 먹이로 제공하기도 한다.


힌두교의 장례 문화도 불교와 비슷하다. 다만 힌두교를 믿는 인도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보관하지 않고 3~4시간 뒤 바로 화장을 한다. 화장으로 나온 유골은 힌두교와 관련된 성스러운 장소에 뿌리고 있다. 물론 간디 같은 유명 인사들은 따로 묘지를 만들어 사람들이 언제든 찾아갈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알라신을 믿는 이슬람교도들은 시신을 땅에 묻는 매장을 하고 있다. 매장할 때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방향을 향하도록 하며, 우리나라처럼 봉분을 세우지 않고 관을 그대로 사용한다.


인도에 사는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들은 아직도 매장을 많이 한다. 그리고 적은 숫자지만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사람들도 조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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