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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언제 부터 시작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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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은 자본주의 출현으로 생겨난 것일까? 


기록이 있는 서양역사에 따르면 기원전 18세기 바빌로니아의 신을 모신 사원들이 상인을 대상으로 돈을 빌려주는 일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스에서도 사원을 중심으로 대출,예금,환전 업무가 이뤄졌다.

   

한국의 불교 사찰도 이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한 적이 있는데 삼국시대에 행해진 보가 바로 그 역할을 했다. 

  

즉 비축해 둔 기금을 외부에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그것으로 구제사업을 수행했다. 

로마시대에는 개인 사채업체들에 의해 금전대출이 이뤄졌다. 

고리대금업에 대한 국가의 규제가 없었기 때문에 돈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로마가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사정이 달라졌는데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금전적 이익을 챙기는 것을 기독교가 죄악시했기 때문이다. 

  

중세에 접어들어 기독교가 사회 전반에 걸쳐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이자는 법으로 금지됐고 위반자는 엄한 처벌을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자를 받는 대출 관행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자를 내더라도 돈이 필요해 꼭 빌려야 하는 사람들과 돈을 벌기 위해 어떤 위험부담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 있어왔다. 

  

중세시대 대금업은 대부분 유태인이 장악했다. 예수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죄로 '정상적인' 사회생활 분야에서 철저히 배제된 그들이 택할 수 있는 직업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5세기 이후부터 상업에 대한 인식과 대출에 대한 사회적 편리성이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합법적으로 영업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게 되었다.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과 아우구스부르크의 푸거 가문이 대표적이다. 

  

이들 가문은 정치와 종교권력에 깊숙히 관여하면서 수 세기 동안 돈을 주무르는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는데 이들은 은행으로 발전하는 토대를 닦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즈음, 빈민구제를 목표로 하는 빈민은행들도 설립되었다. 

근대식 은행은 1609년 설립된 암스테르담 은행이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지방은행이었으나 당시 국제금융의 중심지에서 이 은행이 수행한 역할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환어음 발행과 지불보증 업무를 통해 국제적인 상거래를 활성화시켰고 외환업무에 대한 독점권을 행사해 그 동안 사설은행의 난립으로 빚어진 화폐의 혼란을 종식시키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근대은행의 역사에서 볼 때 암스테르담 은행은 완벽한 모델은 아니었다. 

오직 암스테르담 시와 동인도회사에 대해서만 대부를 해줬을 뿐 일반인에게는 오랫동안 문이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보다 근대적인 성격을 갖춘 은행은 1694년에 설립된 잉글랜드 은행이다. 우선 이 은행의 설립 배경은 왕궁의 횡령과 관련 있다.

  

17세기 영국 상인들은 벌어들인 여유 자금을 정부 기관인 조폐국에 맡기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런데 당시 돈이 궁해진 국왕 찰스 1세가 대부라는 명목으로 조폐국에 보관 중이던 상인들의 돈 20만 파운드를 강탈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상인들은 조폐국에서 돈을 빼고 골드스미스,즉 금을 가공하는 기술자인 금장들에게 맡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예금에 대한 이자도 지불했고 영수증도 발행했는데 이들이 발행한 영수증이 마치 은행에서 발행한 돈처럼 통용되는 일이 많아졌다. 

  

그 후, 17세기 후반 무렵 영국 대외무역이 거대해지면서 상인과 운송업자들의 자금 수요가 크게 늘어나 새로운 금융기관에 대한 요구와 필요가 나타났다. 

  

또 하나 중요한 잉글랜드 은행의 설립 배경은 당면했던 영국의 국가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잉글랜드 은행의 창안자는 상인이었던 윌리엄 패터슨이다. 

그는 상인들이 120만 파운드의 자본을 모아 주식회사를 세우고 이 돈을 모두 국왕에게 대부해 주자는 것이었다. 그 대신 상인들은 출자액에 해당하는 금액을 은행권으로 교부 받아 지불수단으로 통용할 수 있게 하자고 제안했다. 

  

은행 설립에 대한 반대 목소리도 컸는데 나라의 모든 부가 은행 한 개에 집중되고 결국에는 국왕 한 사람만 배부르게 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또한 현금을 가진 금융자산가들의 지위가 전통적 지배계급인 토지 자산가들의 지위를 능가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우려해 대지주와 봉건 영토를 가진 영주들은 반대했다. 

  

그러나 관련 법안이 의회를 통과해 잉글랜드 은행의 설립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불과 열흘 만에 120만 파운드의 자금 동원을 위한 출자가 성황리에 이뤄졌고 곧바로 예금, 대출,어음할인, 은행권 발행 등 근대적 은행의 기능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오늘날까지도 런던이 금융시장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는 것이며 런던 신사의 상징인 양복 수트를 입고 가방을 든 ‘젠틀맨’이라는 단어는 은행원에서 유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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