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민

팬데믹 시대에 중요한 '리어왕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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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 초기에 오랫동안 집에만 있어야 한다는 우려는 사람들에게 분명 여러 논쟁을 야기했다. 


대부분 뉴스는 소셜 미디어에서 시작되었고 이후 뉴욕타임즈, 허핑턴포스트, 포브스와 같은 뉴스 매체들도 온라인으로 옮겨졌다. 이는 집에서 일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디지털 미디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집에서 일하기가 더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코로나바이러스의 대유행으로 집에서 일하는 것이 생산적인 시간인지 아니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인지 다양한 질문이 제기됐다. 

본격적인 경제 활동 재개를 앞두고 이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다. 일부는 사무실 출근으로 전환할 예정이고 일부는 재택 근무를 고수할 예정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팬데믹 시대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있다.


전염병은 생산성을 높인다는 ‘리어 왕 효과’ 

첫째, 리어 왕 효과를 주장하는 가설이다. 셰익스피어는 당시 전염병이 퍼졌을 때 리어 왕을 썼다. 

그리고 곧 셰익스피어는 자신의 집에 갇혀 있는 동안 기적적인 일을 이룬 수많은 역사의 천재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아이작 뉴턴 (Isaac Newton)은 비슷한 환경에서 중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검역하에 미적분을 발명했다.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을 집필하고 최초의 공상 과학 소설 장르를 개척했을 때, 격리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집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정말 영감을 주는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즉 골방에 파묻혀 뭔 가에 몰두했다는 사실은 발명하는 과정을 설명하지만 이는 동시에 전염병으로 갇혀 있는 시간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리어 왕 효과다. 펜데믹 시기에 오히려 생산성이나 창조력이 더 발휘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리어 왕 효과는 의미가 있다. 


집에 있고 필수 분야에서 일하지 않기 때문에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격리되어 있지만,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이 시간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걸작을 쓰거나 새로운 장르를 발명하거나 우주의 기본 법칙을 발견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주어진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은 갖춰진 셈이다. 


최소한 새로운 취미를 가지거나, 기술을 습득하거나, 기업가의 창의적 정신을 이르는 단어 '엔트레프레뉴어 (entrepreneur)' 대신 코로나시대의 창의력을 지칭하는 '코로나프레뉴어 (coronapreneur)'라고 부르는 것도 일리가 있다.


이처럼 한 세기에 한 번 있는 세계적 재앙을 대피하는 동안 생산성을 높이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한편에서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정신을 부패시키는 징조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 이것은 자본주의와 관련이 없고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버티는 자발적 힘이라고 봐야 한다. 


집 뒷마당에 설치된 풀장이나 차고에 마련된 개인 작업실이 자본주의에 무너진 정신의 결과가 아니라 기이한 전염병에 도전하는 창의적 방식인 것이다.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해고되었고 초기에는 그저 할 일없이 하루를 보내야 했다.

다시 경제 활동이 본격 재개되면 생산성이 높은 일부 사람들만 고용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팬데믹 이전부터 성행했던 기업의 생존 방식에 불과하다. 

팬데믹에 사람들이 무위도식하고 지낸 것은 결코 아니다. 소셜 네트워크에는 그 어느 때보다 생산적인 포스팅이 더 많았고 전세계를 휩쓰는 비극 앞에 희망을 놓지 말 것을 격려하는 포스팅들이 줄을 이었고, 비대면에서도 화상 대화는 어느 때보다 높은 집중력을 발휘했다. 


반드시 고용주에게 인정받아야만 생산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가상 세계의 사람들 에게 인정받는 것도 무엇보다 중요한 생산성을 높여주는 하나가 되었다.

 언제 새로운 취미가 필요할지 모르기 때문에 부업으로 변신할 수 있다. 


적어도 바쁘게 지내고 시간을 의미 있게 사용하는 것은, 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며 그것이 생산성이다. 


그 생각은 자본주의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하는 신호가 아니라, 한 세기에 한 번 유행했던 유행병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압도적이며 지속적인 불안에 대처하는 새로운 방식 그 자체다. 

결국, 모든 것은 특이한 상황에서 나타난 생존의 방식이고 그 자체가 생산적인 것이다. 


일과 여가 시간을 지배하는 생산성

18 세기와 19 세기에 서구가 산업화되면서 떠오르는 자본가 부르주아지는 시간에 대한 새로운 사고 방식을 개발했다.


이는 결국 노동 계급에게 전가되었는데 공장의 기계는 매일 같은 시간에 켜져야 하므로 작업자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해야 했다. 


그리고 공장 작업이 보편화됨에 따라 노동자들은 시간의 일부를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일부는 자신이 일하는 사람들의 소유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자본가에게 시간은 돈이며, 구체적으로 노동자의 시간은 고용주의 돈이다.


그러나 작업 지향에서 시간 지향으로의 큰 전환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도덕주의자들은 게으름을 사탄이 일하는 방식이라고 표현했다. 


공장은 지각과 배회에 대해 가혹한 처벌을 가했고 학교 역시 학생들에게 자신의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치도록 설계되었다. 


경제학자 톰슨 (E.P. Thompson)은 자본주의와 청교도주의가 함께 성장함에 따라 인간에게 이전과는 다른 시간과의 관계를 가르쳤다고 주장했다. 

이는 청교도 정신이 빈곤과 관련이 있고 빈곤에서 벗어난 이후에는 시간 가치가 달라질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과업 성취 지향의 경제 원칙에서 자본주의적 인간이 여가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여전히 생산성을 도덕적 선으로 취급하거나 게으름을 사악한 것으로 취급하는 법은 은연 중에 사실인 것처럼 간주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표면적으로는 일을 하지 않지만 무엇인가 하는 데 시간을 보낸다. 

부유한 미국 남성들은 이론적으로 돈이 많고 여성보다 가사 노동 의무가 적기 때문에 여가 시간을 보낼 기회가 많다. 

그럼에도 다른 나라의 동료들보다 일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한 경제학자는 부유한 미국 남성들이 부의 축적에 너무 익숙해져서 돈 버는 것을 오락의 한 형태인 재미로 여긴다고 보았다. 


그러나 부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은 일과 여과의 시간을 동시에 보낸다. 

이는 특히 밀레니얼 세대에게 해당된다. 즉 오늘날의 젊은 직장인에게 일과 여과는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밀레니얼은 스스로를 한꺼번에 최적화하고 더욱 효율적으로 일하고 여가 활용에 더 헌신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런 여가 방식은 일을 하면서도 눈에 띄지 않게 삶의 더 많은 구석에 스며들었고 스마트-폰과 푸시로 가상 세계에 순식간에 전달되었다. 


그럼에도 밀레니얼에게 부모 세대에 당연했던 직업 안정을 가져다 줄 고정된 일자리 확보는 불가능했다. 이는 그들이 게을러서 그런 것이 아니다.


소셜네트워크는 일이자 휴식

기존의 방식으로는 생산성을 말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 이유는 가상 세계가 출현했고 이는 또 하나의 일이자 휴식처로 공존하는 새로운 공간이기 때문이다. 

밀레니얼은 여기에서 일하고 있다. 그들은 부업과 임시직을 합쳐 생계 임금에 가까운 무언가를 마련한다. 


친구들이 감탄할 수 있도록 소셜 미디어에 결과를 게시한다. 소셜 미디어도 일의 한 형태이며 밀레니얼은 클릭을 위해 항상 삶을 최적화해야 한다는 사실에 익숙하다.


집에서 빵 반죽을 만들고, 샬롯 파스타를 요리하고, 책을 색상별로 정리하고, 인스타그램에 정돈된 선반 사진을 게시한다. 

트위터와 텀블러,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의 끝없는 무한 스크롤에 갇혀 시간을 보낸다. 


이 모든 것은 재미로 사용할 제품이 아니라 의무처럼 느껴질 때까지 끊임없는 몰입과 모니터링을 통한 보상의 결과물이다. 

무엇보다 효율적으로 소비하기 위해 팟캐스트와 오디오 북을 1.5 속도로 듣기도 한다. 


넷플릭스는 시청 속도를 높이는 아이디어도 떠올린다. 보아야 할 TV 프로그램 목록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숙제처럼 보이는, 읽어야하는 책 목록을 참조한다. 

이처럼 오늘날 여가는 진정한 여가가 아니라 노동의 연속이다.


현대는 사람들이 이론적으로 쉬고 있을 때에도 일과 생산에 대한 끊임없는 압력을 느끼게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이다.


대유행 동안 발생한 일

지난 일 년간의 팬데믹 시대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까?

누구도 셰익스피어처럼 리어 왕을 쓰라고 하거나 뉴턴처럼 중력의 법칙을 발견할 만큼 위대한 일을 하라고 강요하거나 숙제를 내주지 않았다.


세상은 그 때와 달라졌고 방식은 낯선 것으로 나타났다. 전시회는 열렸으나 인터넷으로 보았고 오페라도 온라인으로 감상했으며 스포츠 경기 역시 관중없이 함성 소리만으로 치렀다. 

흥은 덜했으나 문제는 없었다. 사무실에 모두 출근해야 별 탈없을 것으로 여겨졌던 회사의 하루도 각자 흩어진 채 아무도 출근하지 않고서도 잘 굴러갔다.


누가 뭘 했는지 지구촌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오히려 생생하게 더 빨리 전달됐다. 집도 꾸준히 거래되었고 식당에 가는 대신 집으로 배달해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무엇이 바뀌었는지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지만 게으름을 피우고 있었던 것은 분명 아니다. 세상은 특정한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었고 전염병이 와서 상황을 빠르게 전환시킨 것이다. 


이제 과거의 세상은 다시는 똑같은 방식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과거는 죽었다. 그것은 손실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창작이기도 하다.


디지털 창작물의 트래픽은 그 자체로 수입원이다. 온라인의 쇼핑 방식은 이제 보편적인 소비 방식이 되었다. 안보이는 기술이 빠르게 활용되고 그에 따라 발빠르게 새로운 비즈니스로 연결된다. 


소비자이자 생산자이며 노는 휴식 속에서도 돈을 벌어 들이는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자영업자다.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생산력 혹은 창의력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팬데믹에 집에 갇혀 있으면서도 이웃 혹은 다른 나라의 소셜 네트워크 친구들과 연결되어 빠르게 소통했다. 빠르게 소통하는 것 자체가 생산성을 뒷받침한다. 과거의 개념에 의하면 시간이 생산성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생산해야만 게으름에서 벗어나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게으른 행동 속에서 더욱 값진 생각과 아이디어가 나오고 사람들을 위기에서 구하는 활력을 받았다. 활동을 멈추자 공기는 더욱 깨끗해 졌고 번잡함이 해소되자 식물과 동물이 복귀했다. 직장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일깨웠고 공공의 삶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배웠다. 


활동을 멈추자 팬데믹이 가져온 새로운 생산성을 알게 되었다. 

오늘날의 리어왕 효과는 이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에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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