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광풍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뜨거웠던 미국의 주택 시장이 진정세에 접어들었다.
집값은 여전히 대체로 오르고 있지만 상승폭이 크게 줄었다.
블룸버그는 미국 전역에서 부동산 매물이 급속히 늘고 있다며 모기지 인상이 부동산 시장의 열기를 식히
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보도했다.
리스팅 건수가 1년 전에 비해 31% 많으며 석 달 연속으로 역대 최고 연간 증가율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바이어의 선택지가 늘어난 만큼 이제는 셀러들이 집값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블룸버그는 평가했다.
그렇다면 과연 주별 상황은 어떨까.
버지니아
레드핀에 따르면 지난 6월 버지니아의 중위 주택 거래 가격은 436,200달러로 작년 동월보다 5.3% 상승했다.
중요한 건 작년 기록은 재작년보다 18.9% 높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집값은 여전히 오르고 있지만 상승률은 3~4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주택 거래량에도 반영되어 이 시기 버지니아에서 팔린 집은 13,416채로 1년 전에 비해 18.2% 감소했다.
버지니아 리얼터 협회의 데니스 레이미 회장은 “거래가 주춤한 건 많은 바이어가 집 알아보기를 중지했기 때문”이라며 “공급 부족과 금리 인상은 바이어 입장에서 힘든 환경을 조성했다”고 평가했다.
금리가 급등해 모기지 부담이 커지자 집 장만을 단념하고 렌트 시장 등으로 눈을 돌리는 바이어가 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그레이스 김 부동산의 그레이스 김 대표는 최근 북버지니아 지역 렌트 시장이 초강세 상태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 시장이 진정세에 접어드는 이유는 또 있다.
협회의 라이언 프라이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주식 시장이 하락세인 것도 큰 문제”라며 “사람들이 수중에 여유 자금이 많다고 느끼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몇 달 후나 연말까지는 상승세가 완화될 것으로 본다”면서도 “2008~2009년 주택 위기처럼 집값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락할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메릴랜드
메릴랜드 역시 부동산 가격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그 폭은 좁아졌다.
작년 6월 중위 집값은 재작년 동월보다 14.7% 높았지만 올해는 8.8%만 올랐다.
중위 집값은 1년 전에 비해 8.8% 오른 420,900달러로 나타났다.
주택 거래 수도 전년도보다 21.6%가 줄어든 8,504채에 불과했다.
메릴랜드 리얼터 협회의 크레이그 울프 회장은 “공급이 증가해 바이어들에게 기회가 늘어난 건 다행이지만 모기지 금리도 오르고 있는 바람에 거래가 위축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메릴랜드 남부 리얼터 협회(SMAR)에 따르면 지난 7월 메릴랜드 남부의 매물 건수는 1년 사이 44.46% 증가해 코로나19 발발 이후 최고치를 달성했다.
다시 말해 공급은 늘어났는데 금리 인상으로 수요는 잦아들어 집값이 소폭이나마 잡히고 있는 것이다.
그 증거로 1년 전에는 주택 최종 판매 가격이 평균적으로 당초 리스팅 가격의 101.8%였지만 올해에는 100.6%에 그쳤다.
이는 한 매물에 다수의 오퍼가 들어와 가격 경쟁이 붙는 일이 드물어지고 있으며 셀러와 바이어가 합리적인 타협을 많이 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SMAR은 설명했다.
그레그 켄턱 SMAR 회장은 “금리가 오르면 예금 이자도 오르니 오히려 이득을 보는 구매 희망자도 있을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뉴욕
지난 6월 뉴욕에서 거래된 주택 수는 14,196채로 1년 전에 비해 4.2% 줄었으며, 중위 주택 판매가는 573,600달러로 6.7% 상승하는 데 그쳤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작년 6월 수치가 재작년에 비해 31.1% 높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안도의 한숨이 나오는 대목이다.
상승폭이 무려 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뉴욕주 리얼터 협회는 26개월 연속 오름세인 집값과 금리 인상, 공급 부족이 부동산 시장을 둔화시켰다고 분석했다.
협회에 따르면 최근 뉴욕의 매물 수는 45,441채로 1년 전에 비해 14.3% 감소했다.
그 사이 30년 고정 모기지 금리는 5.52% 올랐고 집값을 비롯한 물가가 전반적으로 상승해 바이어들의 동력을 꺾었다는 것이다.
밀러 새뮤얼 부동산의 조너선 밀러 CEO는 “6월 계약 체결 수와 신규 리스팅 수가 팬데믹 이전 동월보다 적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플레이션 등 시장에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요소가 많아 바이어들을 주춤거리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택 거래가 줄어든 만큼 당연히 불이 붙은 건 렌트 시장이다.
맨해튼의 평균 렌트비는 뉴욕시 역사상 처음으로 5천 달러를 돌파했고, 브루클린과 퀸즈느 각각 3천 달러 후반대와 초반대를 달리고 있다.
밀러는 “교외로 이사 가려던 사람이라면 12월에 3.1%였던 모기지가 크게 뛰어 5%를 상회하자 발을 빼는 것”이라며 “그럼 입주 가능한 아파트는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즉 내 집 마련을 하려던 사람들이 렌트 생활을 이어가기로 하면서 렌트 매물이 줄고 가격도 올라간다는 것이다.
뉴저지
뉴저지의 중위 집값은 473,200달러로 전년 대비 10.3%의 상승률을 기록했으며, 이는 작년 동월의 상승률 25.0%에 비해 절반 이하로 둔화된 것이다. 주택 거래량도 1년 전에 비해 14.4% 줄어든 11.740채였다.
뉴저지 리얼터 협회의 로버트 화이트 회장은 “더 이상 한 매물에 20~25명이 오퍼를 넣고 권고된 리스팅 가격보다 4~10만 달러 이상 높은 오퍼가 들어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며 “한 매물에 5~12명이 오퍼를 넣고 2~5만 달러 높은 오퍼가 들어온다”고 밝혔다.
여전히 셀러가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예전만큼 일방적이진 않다는 의미다.
또한 주택 공급이 꾸준히 늘고 있어 상승 완화는 지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집값이 급락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은 수요가 꾸준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협회는 모기지 금리가 작년에 비해 2.5% 포인트 높아진 만큼 많은 바이어가 마켓을 떠나야 정상이지만 현재까지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화이트는 “매일 같이 문 앞에 나타나는 수준은 아니지만 들어오는 매물마다 바이어가 달라붙고 있다”고 부연했다.
여기에 부동산 시장이 연중 가장 차분할 때가 7월과 8월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한편 주택 시장이 주춤하는 사이 뉴저지 역시 렌트 시장이 힘을 얻고 있다.
뉴저지 주택 공동체 개발 네트워크(HCDNNJ)에 따르면 투룸 아파트 한 채에 들어가려면 연간 수입이 6만 5천 달러 이상이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주택 가격이 다시 내려가면 다시 구매로 눈을 돌리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모든 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집값은 여전히 오르고 있지만 상승률은 대폭 완화됐다.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 등으로 인해 거래량은 감소했으며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렌트 시장으로 향하는 바이어가 많아졌다.
셀러가 주도권을 쥐고 바이어끼리 경쟁하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집을 마련하려는 사람 입장에서는 희소식이고, 팔려는 사람도 가격이 내려가진 않은 만큼 손해 보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이처럼 셀러와 바이어가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을 할 수 있게 된 만큼 시장이 정상 궤도로 돌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향후 집값이 상승세가 위축되는 걸 넘어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내려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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