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로리다의 닉네임은 ‘선샤인 스테이트’이다. 같은 햇빛이지만 건조하고 따가운 서부 사막 쪽과는 다르다. 아열대 특유의 습기와 열기, 그리고 생(生)과 기(氣)를 담뿍 품은 햇살이다. 그 태양의 햇살을 받으며 오렌지가 자란다. 오렌지밭은 지천이다. 제주도만 한 땅이 온통 다 오렌지 농장이다. 미국에서 먹는 오렌지 10개 가운데 6개는 플로리다산이라고 보면 된다.
플로리다는 게다가 완전 평지이다. 주 전체 면적이 170,312km²로 한반도의 85%가량 된다. 그럼에도 주 내 ‘최고봉(?)’인 브린턴힐(Britton Hill)의 고도는 고작 105m에 불과하다. 서울 남산의 중턱에도 못 미치는 높이다. 주 전체 해발 고도도 평균 30m이다. 남한 면적의 두 배쯤 되는 땅이 구릉조차 찾기 어려운 대평원을 이루며 ‘숲과 늪의 바다’가 펼쳐지는 곳이다.
플로리다는 또한 헤밍웨이의 고장이기도 하다. 플로리다 반도 남부 끝자락의 산호초 섬들을 다리로 연결한 해안도로 240여km를 달리면 ‘키웨스트’가 나온다. 쿠바가 지척인 이곳이 ‘바다와 노인’의 산실이다.
미대륙의 영토는 동토(凍土)에서 아열대 지대까지 북반구 대부분에 걸쳐 펼쳐져 있다. 알래스카에 만년설과 빙하가 있다면, 플로리다에는 야자수와 열대 악어가 득실거린다. 겨울이 없는 서핑 천국, 디즈니랜드가 만들어 내는 동화와 마법의 나라 등등. ‘지상의 낙원’ 플로리다를 대표하는 상징들이다.
플로리다는 관심과 눈길을 끌 만한 요소들이 많은 곳이다. 아열대에 가까운 기후로 길가에 늘어선 야자수 나무들은 미국 속의 이국(異國) 같은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카리브해 연안을 방불케 하는 상하(常夏)의 날씨, 따뜻하고 파란 바닷물, 하얀 백사장들이 일찍부터 최고의 피한지(皮寒地)이자 휴양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실제로 플로리다의 핫시즌은 겨울이다. 디즈니랜드를 비롯한 온갖 테마파크, 호텔, 리조트 등 휴양지는 겨울철에 오히려 더 흥청거린다. 중북부와 북동부의 엄동설한을 피해 노년층들이 이주하면서 은퇴지의 대명사가 됐다.
플로리다는 ‘인종의 샐러드볼’ 같은 곳이다. 일찍이 식민지 시대부터 세계 곳곳에서 온갖 이유와 목적으로,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몰려들면서 함께 뒤섞였다. 2010년대 기준 백인계 56%, 히스패닉계 27%, 흑인이 17%를 차지하고 있다. 히스패닉계나 흑인 등 소수계의 비율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플로리다에는 특히 쿠바계 주민들이 많다.
쿠바의 공산혁명 이후 카스트로 정권 때 탈출한 ‘뗏목 피플’의 주인공들과 후손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플라스틱 통 등으로 엮은 부유물에 몸을 실은 탈출 난민들이 목적지로 삼은 곳이 ‘키웨스트’이다.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90마일(144km) 떨어진 키웨스트는 그들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점이었다.
정착한 난민들은 키웨스트를 중심으로 ‘고국이 보이는 곳’에 정착했다. 플로리다의 대도시 마이애미에도 ‘리틀아바나’라는 관광지구가 있다. 마이애미 북쪽의 하이얼리아는 쿠바 출신이 70% 이상이 거주하는 데다, 대부분 가정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해 미국 내 최대 히스패닉계 도시로 유명하다. 플로리다의 경제력은 외부에 비치는 것보다 훨씬 딴딴하다. 주의 GDP는 2022년 1조 3,000억 달러로 미국 내 4위이다. 세계 국가와 비교하면 한국에 조금 뒤지고, 스페인과 비슷한 15위권에 올라 있다.
인구가 2,200만 명으로 미국 내에서는 캘리포니아, 텍사스에 이어 세 번째이다. 머릿수가 많은 만큼 정치적 비중도 크다. 인구 비례로 할당하는 미국 대통령 선거인단 수가 전체 538명 가운데 30명으로 역시 캘리포니아 54명, 텍사스 40명의 다음 순위를 차지하며, 뉴욕이 28명으로 4위에 올라 있다. 플로리다는 정치적 성향으로 인해 특히 미국 대선에서의 비중이 크다. 캘리포니아, 뉴욕은 전형적인 민주당 성향의 주이다.
민주당 당적을 지녔다면 ‘말뚝’이 출마해도 당선된다는 원조 ‘블루 스테이트’이다. 플로리다는 원래 뼛속부터 ‘레드 스테이트’였던 곳이다. 남북전쟁 때도 남군에 가담했고, 막강한 해군력과 해상 수송로를 장악한 남군의 주축이었다. 당연히 전형적인 ‘노예주’이며, 대규모 사탕수수, 옥수수, 감귤 농장주의 ‘올드 머니(전통 상류층)’가 주류를 이루는 공화당의 텃밭이었다. 하지만 플로리다는 이제 붙박이식의 공화나 민주가 아닌 ‘스윙 스테이트’로 변모하고 있다.
공화당의 텃밭 ‘레드’에서 ‘블루’가 혼재된 ‘퍼플’로 바뀐 것은 주민 구성의 변화 때문이다. 마이애미, 올랜도, 탬파, 잭슨빌 같은 대도시들에 몰려든 젊은층에다, 은퇴지로 삼아 새로 둥지를 트는 북동부의 고학력 고소득 ‘실버 세대’들이 민주당 색깔을 더한 결과이다.
2000년 대선 때는 이곳에서 미국 초유의 정치 드라마도 전개됐다. 당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는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에게 주 전체 투표에서 불과 537표를 앞섰다. 말이 수백 표이지 당시 플로리다 선거인단 25명을 독식할 수 있는, 결과적으로 대권의 향방을 가르는 천금 같은 ‘간발의’ 차이였다. 당연히 투표지에 대한 재검표 시비가 일었다.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의 재검표 중단 결정, 고어 후보가 이를 받아들이기까지 6주간여 동안 미국은 혼돈에 빠졌다. 주식은 12% 넘게 빠지고 금값은 폭등했으며, 금융시장은 출렁거렸다. 그러나 고어 후보의 깨끗한 승복은 미국 정치의 귀감으로 남았다.
미국에 있어 플로리다는 ‘복덩이’ 그 자체이다. 오렌지는 미국 전체 생산량의 65%, 오렌지쥬스는 90%가량을 공급한다. 파인애플, 사탕수수, 토마토 등도 최대 공급처 역할을 하고, 쇠고기 수출량은 세계 3~4위를 다툴 정도이다.
지천으로 널린 농장에서 무지막지하게 생산되는 농산물로만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올랜도의 디즈니월드, 시월드, 유니버셜스튜디오 등 테마파크들은 동심(童心)과 노심(老心)을 가리지 않고 플로리다를 찾게 만드는 세계적인 관광명소이다. 1971년에 개장한 디즈니월드의 ‘매직 킹덤’ 한 곳의 입장객만 연간 2,000만 명이 넘는다. 미국 내는 물론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을 빨아들이는 ‘엔터테인먼트 블랙홀’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다. 관람객들이 뿌리는 달러만 연간 수백억 달러가 넘는다.
마이애미를 비롯한 플로리다의 주요 항구들은 미대륙과 라틴아메리카, 카리브해를 잇는 관문이다. 미국이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으로 보내는 수출 물량의 20%가 플로리다를 통해서 나간다.
플로리다 올랜도의 동쪽 대서양 연안 케이프커내버럴(Cape Canaveral)에 자리잡은 세계 최대의 우주선 발사기지 케네디스페이스센터(Kennedy Space Center: KSC) 또한 플로리다의 심벌이자 경제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인류 최초의 달 착륙선 아폴로 11호의 산실이자, 미국 항공우주산업의 허브가 바로 여기다. 플로리다 북동부 지역에만 2,000개 이상의 항공우주산업 관련 회사들이 모여 있다. 이들이 창출해 내는 부는 연간 2,000억 달러에 육박한다.
플로리다는 창조와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롤모델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상하의 기후에다 옥토를 밑거름으로 과일, 농작물, 육우를 주력 상품으로 만들어 냈고 테마파크, 항공우주단지의 개발로 무에서 유를 창출해 냈다. 하늘이 내린 ‘축복’에다 인간의 ‘창의(創意)’를 결합해 ‘낙원’을 건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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